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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산불과 기후 변화

by 현이에게 2025. 5. 26.

2025년, 영국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여름을 맞이하고 있다. 차분하고 온화한 기후로 잘 알려진 이 땅에서, 불과 5개월 사이에 무려 439건의 산불이 발생했다는 통계는 단순한 자연현상을 넘어선 경고처럼 다가온다. 이 사태는 단순히 날씨의 우연한 변덕 때문이 아니다. 기후 변화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영국 역시 더 이상 예외가 아님을 보여주는 현실적인 신호이다. 이 글에서는 2025년 현재 영국의 산불과 기후 변화,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어떤 대응을 해나가야 할지를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기록적인 폭염과 산불 증가: 변해가는 영국의 기후

영국은 오랜 시간 동안 ‘습하고 서늘한 날씨’의 이미지로 대변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영국의 기후는 뚜렷하게 달라지고 있다. 특히 2025년 들어 여름철 폭염 현상이 심각해졌고, 강수량은 극단적으로 줄어드는 등 기후 패턴이 급격하게 변동하고 있다. 런던과 버밍엄, 브리스톨 같은 주요 도시는 물론, 스코틀랜드 고지대와 웨일스 산악 지대에서도 35도 이상의 기온이 지속되는 날이 잦아졌으며, 이는 산불 발생의 위험 요인인 고온·건조·강풍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기상청은 2025년 현재 영국의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약 1.8도 이상 상승했다고 밝혔다. 이는 기후 변화가 이미 현실로 다가와 있으며, 더 이상 먼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강하게 시사한다. 특히 이례적인 더위로 인해 숲과 초지가 바싹 마르고, 평소보다 작은 불씨에도 대형 화재로 번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점이 산불 급증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산불의 충격: 환경, 경제, 건강을 뒤흔든 재난

산불이 자연생태계에 미치는 피해는 단기간에 회복되기 어려운 수준이다. 수천 헥타르에 달하는 삼림과 농지가 소실되었고, 일부 지역은 수십 년에 걸쳐 조성된 생물 다양성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그러나 피해는 자연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잉글랜드 남부와 웨일스 일부 지역에서는 화재가 주택가 인근까지 접근하면서 수백 가구가 긴급 대피했고, 일부 고속도로와 철도 노선은 연기와 화재로 인해 일시 폐쇄되었다.

경제적인 피해도 막대하다. 농작물 피해는 물론, 방목형 목축업을 중심으로 한 축산업도 큰 타격을 입었으며, 연기와 화재로 인한 관광객 감소는 특히 여름철 관광지에 큰 손실을 안겼다. 여기에 더해, 대규모 산불이 배출하는 탄소는 영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직접적인 역행이 되고 있다. 산림은 원래 탄소를 흡수하는 기능을 하는데, 산불로 인해 탄소를 오히려 방출하게 되면서 기후 위기의 악순환을 부채질하게 되는 것이다.

공중보건 측면에서도 산불은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미세먼지와 유해가스 농도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천식 및 호흡기 질환 환자가 급증했고, 고령자와 어린이에게 특히 취약한 환경이 조성되었다. 잦은 기상 특보와 대기질 경보는 시민들에게 실외 활동 자제를 요청하는 상황으로 이어졌고, 이는 일상생활과 경제 활동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영국의 산불과 기후 변화
영국의 산불과 기후 변화

 

대응과 과제: 정부, 산업, 시민의 역할

2025년의 연이은 산불 사태는 영국 정부가 기후 변화 대응 전략을 전면 재검토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정부는 올해 초, ‘기후 재난 대비 종합계획’을 발표하며 산불 예방 및 대응에 관한 새로운 체계를 수립했다. 구체적으로는 위성 및 드론을 활용한 산불 조기 탐지 시스템 도입, 소방 장비 및 인력에 대한 예산 대폭 증액, 산림 내 방화선 구축 강화, 고온기 임시 대피소 설치 계획 등이 포함되었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기후 회복력 산림 조성 프로젝트’를 통해 산림 관리의 패러다임 전환을 꾀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복구를 넘어, 기후 변화에 견딜 수 있는 수종을 선택하고 지속 가능한 조림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사후 대응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고 지적한다. 기후 변화의 원인이 되는 온실가스 배출 감축이 병행되지 않으면, 산불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영국은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탄소 배출량을 68%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바 있으나, 최근 몇 년간 진행 속도는 정체되고 있다. 산불이 촉발한 위기를 교훈 삼아, 에너지 전환과 산업 구조 개선, 시민 실천 확대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시민 사회도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런던과 옥스퍼드, 브리스톨 등 주요 도시에서는 청년 기후운동 단체가 자발적으로 산불 예방 캠페인과 지역 숲 보호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며, 학교와 커뮤니티 차원의 기후 교육 프로그램도 늘어나고 있다. ‘기후 위기는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인식의 확산은 정부 정책과 산업 전환에 힘을 보태는 긍정적인 요소다.

 

 

불타는 경고,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산불은 단순한 재해가 아니라, 기후 위기가 실질적인 피해로 드러나는 지점이다. 영국이 겪고 있는 2025년의 산불 사태는 기후 변화가 더 이상 추상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고 우리가 지금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산불은 경고다. 그리고 그 경고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지금 우리가 행동하지 않는다면, 더 심각한 피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시에, 지금이야말로 변화를 위한 가장 결정적인 기회일 수도 있다. 정부와 기업, 시민이 함께 행동한다면, 이 위기를 새로운 전환점으로 만들 수 있다.

자연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제는 그 신호를 진심으로 듣고, 행동으로 답해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