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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형 모듈 원자로(SMR)의 확산

by 현이에게 2025. 5. 29.

소형 모듈 원자로(SMR)의 확산은 현재 글로벌 에너지 정책의 중심 의제로 부상하고 있다. 기후 변화에 따른 탈탄소화 압박, 에너지 안보의 재조명, 대규모 전력망 구축의 한계 등 다양한 요인 속에서 각국은 기존 대형 원전의 대안으로 SMR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적 가능성과 함께 비용, 안전성, 방사성 폐기물 문제 등 해묵은 논쟁도 다시금 떠오르고 있다. 이 글에서는 SMR의 개념과 확산 배경, 각국의 전략과 논점, 그리고 국제 에너지 질서에 미치는 파장까지 살펴본다.

 

소형 모듈 원자로(SMR)의 확산
소형 모듈 원자로(SMR)의 확산

SMR이란 무엇인가?

소형 모듈 원자로(Small Modular Reactor, SMR)는 출력 300MW 이하의 원자로로, 대형 원전과 비교해 크기와 출력이 작고, 공장에서 사전 제작된 모듈을 조립하는 방식으로 설치된다. 이는 건설 기간을 단축하고, 지역 기반 전력 수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는다.

 

기존 대형 원전이 수십억 달러의 초기 투자와 10년 안팎의 긴 건설 기간을 요구한 반면, SMR은 설계 단순화와 표준화를 통해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과 빠른 설치를 실현할 수 있다고 기대된다. 또한 SMR은 사고 발생 시 피해 범위를 줄일 수 있도록 수동 냉각 시스템 등 첨단 안전 기술이 도입되고 있으며, 내륙지역, 군사기지, 산업단지 등 다양한 입지에 유연하게 배치 가능하다는 점에서 전략적 유연성을 제공한다.

 

이러한 특징은 특히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는 베이스로드 전원, 혹은 탄소 배출 없는 산업 열 공급원으로서 주목받고 있다.

 

 

확산의 배경

SMR이 확산되는 배경에는 세 가지 주요 요소가 자리 잡고 있다. 첫째는 기후 위기 대응이다. 파리협정 이후 전 세계적으로 탄소중립(Net Zero)이 국가 정책 목표로 자리 잡으면서, 기존의 석탄·가스 기반 전력망을 대체할 저탄소 에너지원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증가했다. 태양광·풍력은 빠르게 확산되고 있으나, 간헐성과 저장 기술 한계로 인해 안정적 전력 공급에는 여전히 문제가 있다.

 

둘째는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화석연료 수입에 대한 의존을 줄이려는 시도가 가속화되었고, 이는 국산 또는 지역 기반 에너지원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SMR은 전통적인 원전보다 배치 유연성이 크기 때문에,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을 강화하는 데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셋째는 기존 인프라와의 연계 문제다. 대형 원전은 전력망이 미비하거나 정비가 어려운 개발도상국이나 외곽 지역에 설치가 어렵다. SMR은 상대적으로 전력망 연계 부담이 적고, 일부 모델은 독립형 발전소로도 운용이 가능하다. 이는 섬 지역, 극지, 산업단지 등 특정 지역에서 독립적 에너지 자립을 가능하게 하며, 국방 및 산업용으로도 활용 가능성이 높다.

 

 

각국의 전략

현재 SMR 개발과 도입에 가장 적극적인 국가는 미국이다. 미 에너지부(DOE)는 NuScale Power, TerraPower 등 민간 기업들과의 협력을 통해 다수의 SMR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으며, 2029년까지 상용화가 목표다. NuScale의 ‘VOYGR’ 모델은 세계 최초로 NRC(원자력규제위원회)의 설계 인증을 획득했으며, 미국 내뿐 아니라 캐나다, 루마니아, 우크라이나 등에도 수출 계획이 검토되고 있다.

 

캐나다 역시 SMR 개발을 국가 전략으로 격상했다. 2020년 SMR 로드맵을 발표하며, 오타와 정부는 전력 공급, 탄소 배출 감축, 광산·극지 지역 에너지 공급을 위한 SMR 배치를 추진 중이다. 캐나다의 U-Battery, ARC Clean Energy, Moltex Energy 등이 대표적인 기업이다.

 

한국은 중소형 원자로 'SMART'를 개발해 사우디아라비아와 협력 중이며, 최근에는 북미 시장 진출도 모색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미 북극해 연안에 부유식 원자로 ‘아카데믹 로모노소프’를 상업 운용 중이며, 향후 시베리아 개발에도 활용할 계획이다. 중국은 자국 내 소형 원자로 건설을 공식 발표하고 ‘링룽원’ 프로젝트를 착공하며, 내부 수요와 해외 수출을 동시에 겨냥하고 있다.

 

 

논쟁의 여지

그러나 SMR을 둘러싼 낙관론에 대해 여러 비판과 회의적 시각도 존재한다. 가장 큰 문제는 비용이다. SMR은 단위당 출력이 작기 때문에, 초기 투자 대비 발전 단가가 높아질 수 있다. 특히 아직 상용화되지 않은 설계가 많아 대량 생산에 따른 규모의 경제 효과가 실현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실제로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공급 가능한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또한 안전성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일부 기술은 기존 경수로 기반이 아니라, 고온가스로, 용융염로, 소듐냉각고속로 등 새로운 방식으로 설계되고 있어, 아직 운전 경험과 안전 규정이 미비하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특히, 많은 SMR이 핵연료 재처리 및 재활용을 동반할 경우 핵확산 위험 또한 새로운 안보 이슈가 될 수 있다.

 

방사성 폐기물 처리 역시 해결되지 않은 문제다. 소형이라는 특성 때문에 원자로 수가 늘어나면, 폐기물 관리 비용도 오히려 증가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있으며, 이 문제는 지역 수용성과도 연결된다. 대중의 불신이 여전한 가운데, SMR 설치 지역에서는 사회적 반대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새로운 에너지 질서의 가능성과 변수

SMR은 향후 수십 년 간의 에너지 시장에서 중요한 기술 중 하나로 자리 잡을 수 있다. 특히 신흥국과 에너지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서는 실용적인 대안이 될 가능성이 높다. 동시에, 미국과 중국, 러시아 간의 에너지 기술 주도권 경쟁의 새로운 전선이 될 수 있으며, 각국의 외교 정책과 안보 전략에도 깊숙이 연결될 전망이다.

 

국제 원자력기구는 SMR이 안전성과 비확산성을 보장받는 범위 안에서 확산될 경우,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SMR이 대형 원전을 대체할 수 있을지는 아직 불확실하며, 기술적 진보와 함께 사회적 수용성, 경제적 타당성, 규제 정비 등 다각적인 과제가 존재한다.

 

소형 모듈 원자로의 확산은 단순한 에너지 기술의 도입을 넘어, 기후 변화, 안보, 산업 정책, 지역사회 등 다양한 요소와 복잡하게 얽힌 이슈다. 향후 이 기술이 대세로 자리 잡을지, 혹은 또 하나의 에너지 실험으로 남을지는, 결국 정책 결정자와 시장, 시민 사회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