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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릭스(BRICS+) 확장과 글로벌 질서 재편

by 현이에게 2025. 5. 27.

2025년 들어 국제 정치경제의 흐름에서 가장 주목받는 움직임 중 하나는 브릭스(BRICS)의 확장, 이른바 '브릭스 플러스(BRICS+)'의 본격적인 전개다. 브릭스는 기존에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아르헨티나, 이집트, 에티오피아, 아랍에미리트 등 중동과 남반구의 주요 신흥국들이 추가로 가입하면서 이질적이지만 전략적으로 묶인 새로운 블록이 탄생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브릭스(BRICS+) 확장과 글로벌 질서 재편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이 그룹이 어떻게 기존의 미국·서방 중심 체제에 도전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결과 국제경제와 정치가 어떤 방향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있는지 살펴본다.

 

브릭스(BRICS+) 확장과 글로벌 질서 재편
브릭스(BRICS+) 확장과 글로벌 질서 재편

 

브릭스의 확장, 단순한 규모의 확대가 아니다

브릭스는 2009년 처음으로 외교장관 회의를 통해 등장한 협의체였으며,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이 합류하면서 BRICS라는 이름이 확정되었다. 이후 약 15년간 주요 신흥국 간 경제 협력, 개발 금융, 다자주의 강화 등을 기조로 움직여왔으며, 미국과 G7 국가들의 경제·금융 지배에 대한 균형자로 자신을 자리매김해왔다.

 

2023년 요하네스버그 정상회의를 기점으로, 브릭스는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아랍에미리트, 이집트, 에티오피아, 아르헨티나 등의 정식 초청을 통해 ‘브릭스 플러스(BRICS+)’라는 확장 단계에 진입했다. 이들 국가는 각각 에너지 자원, 전략적 위치, 인구 규모, 지정학적 영향력 등을 보유하고 있어 브릭스의 잠재력을 수직 상승시키고 있다.

 

단순히 회원국 수가 늘어난 것이 아니라, 다극화된 국제질서를 지향하는 신흥국들의 공동 대응 전략이 구체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브릭스의 확장은 기존의 지역기반 협력체들과 차별화된다.

 

 

탈달러화 움직임과 결제시스템의 이중화

브릭스 확장의 핵심 동기 중 하나는 미국 달러 중심의 금융체계에서 벗어나려는 전략, 즉 탈달러화다. 러시아와 중국은 이미 양국 간 무역에서 자국 통화 결제를 확대하고 있으며, 인도와 브라질도 루피, 헤알 등의 사용 확대를 모색 중이다. 특히 최근 브릭스 개발은행은 미국 달러가 아닌 브릭스 회원국 통화로 대출과 투자를 진행하는 방향으로 점차 전환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UAE의 참여는 이 흐름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석유 수출 대금을 미국 달러가 아닌 위안화 또는 기타 통화로 수취할 경우, 글로벌 원유 시장의 기축통화 구조 자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러시아는 SWIFT 국제결제망에서 배제된 이후 자체적인 결제 시스템(SPFS)을 중국의 CIPS와 연동하고 있으며, 브릭스는 공동의 디지털 결제 네트워크나 CBDC를 활용한 결제 이중화 전략을 본격 검토 중이다. 이는 단순한 금융 기술의 변화가 아니라, 국제 금융의 패권이 다극화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지정학적 연대와 전략적 모순

브릭스+의 확장은 경제적 이해관계뿐 아니라 지정학적 연대 강화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서방 중심의 제재와 외교 고립을 경험한 러시아, 이란 같은 국가는 브릭스를 통해 외교적 출구를 확보하고 있으며, 자원국 중심의 협력이 강화되면 글로벌 공급망에도 큰 파장을 미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연대는 그 자체로 내부의 전략적 긴장을 내포하고 있다. 예컨대 인도와 중국은 국경 갈등과 지역 패권 경쟁으로 신뢰가 낮은 상태이며,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도 역사적으로 경쟁 관계에 있었다. BRICS+는 정치 체제, 외교 노선, 안보 이해관계가 상이한 국가들의 연합체로, 구속력 있는 공동 정책을 도출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 질서에 대한 불만과 독자적 생존 전략이라는 공통분모가 이 느슨한 연합을 계속 결속시키고 있으며, 국제기구와 다자 외교무대에서 공동의 입장을 만들어내는 정도의 협력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서방의 대응과 다자주의의 미래

브릭스의 확장에 대해 미국과 유럽 주요국은 공식적인 비판보다 신중한 관망 기조를 보이고 있다. 이는 브릭스 내부의 불균형과 이질성에 대한 판단 때문이기도 하며, 동시에 우방국들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한 전략적 인내로도 해석된다.

 

다만, 서방은 G7, NATO, IPEF(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 EU 확장 등을 통해 자체적인 블록 강화에 나서고 있으며, 이는 향후 국제 정치경제 질서가 복수의 협력 체계가 병존하는 다극적 구조로 재편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국제 무역, 금융, 외교, 기술표준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미·중 중심의 이중구조화가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브릭스+는 단순히 ‘비서방’ 연합체라기보다, 제3의 구조적 축을 형성하는 실험적 시도로 읽힌다.

 

 

흐름의 방향은 명확하나, 결과는 미지수

브릭스의 확장은 단순한 경제 협력을 넘어서 세계 질서의 구조적 전환을 예고하는 사건이다. 달러 중심의 금융체계, 서방 주도 다자외교, 글로벌 공급망의 위계 구조에 대한 이질적이고 실험적인 도전이 본격화되었다. 하지만 이 흐름이 어디까지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브릭스+는 아직까지 규범이나 제도적 틀이 약하고, 회원국 간 이해관계가 상이하며, 리더십 구도가 분산되어 있다. 미국과 서방의 견제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점점 더 다양한 협력과 대립의 축을 만들어가는 다극적 체제로 향하고 있다. 브릭스+는 그 중심에서,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품고 세계 질서의 재편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고 있다.